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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란

by $%!@$!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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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와 스마트폰이 활성화된 시기가 지속되고, 시대가 변했다는 느낌은 의외의 곳에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최고였고 언제나 온몸이 더러울 정도로 돌아다녔는데, 어느 새부터 골목길이나 아파트 공터에서 아이들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요즘은 코로나까지 겹쳐 더욱 보기 어려워졌다.

뛰노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면 예전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것 같아 내심 기특하고 그리운 감정이 들었는데, 이제는 부모님의 머리맡에 있는 초등학생 때 사진을 보지 않고서는 그리워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로 3년 만에 본 친구와 술 한잔 하고 집으로 온 뒤 어렸을 적을 생각해봤다.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면 진한 그리움들로 가득 찬다.

젊은 모습의 부모님부터, 이제는 연락조차 되지 않는 같은 반 친구들까지 스쳐 지나간다.

 

한 친구의 부모님이 초등학교 졸업 때 우리를 보고 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표현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글을 보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 와서 보면 많은 생각이 남는 글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호수-왼쪽-길에-어린아이-두명이-손을-잡고-걷고-있다

어린 시절의 그리움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진한 그리움들로 가득 찬다. 그 그리움이 부모형제일 수도 있고, 친구들일 수도 있고, 나와 함께 한 산과 바다의 들판일 수도 있다.

도시의 아이들과는 달리 문화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우리들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고유의 놀이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바닷물에 있다 보면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고 피부는 쭈글쭈글해져 며칠 후엔 그을린 피부가 벗겨져 볼품없는 모습으로 바뀌어도 우린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했다.

겨울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방문이 열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우리들은 지칠 줄 모르고 눈싸움과 썰매를 탔고 직접 연도 만들어 높디높은 하늘로 날려 올렸다. 거기에 우리들의 꿈을 실어서 말이다.

어린이가 점점 줄어서 나의 초등학교 모교는 폐교가 된 지 오래다. 잡초 무상한 모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요즈음 우리 아이들은 나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다르다. 아마 세월의 흐름이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리라.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미래를 향한 꿈일 것이다.

진달래꽃 가득한 산길이 아니어도, 벼가 익은 황금들판과 코스모스 가득한 길을 걷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꿈을 키운다. 흙냄새와 변화무쌍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우리 아이들의 꿈을 키운다. 높고 맑은 하늘처럼 푸른 꿈을 키워가며 지혜를 살찌우고, 친구와의 우정도 쌓고, 몸과 마음이 함께 쑥쑥 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훗날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행복하고 따스한 미소가 입가에 머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 초등학생의 어머니가

 

 

 

동계올림픽을 보다 보니 문득 드는 기억이 있다.

눈 한번 보기 힘든 부산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와서 차들이 미끄러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뛰어나와 놀고 있는 모습들이 생각이 난다.

피겨의 삼회전 점프가 부럽지 않은 열 바퀴의 회전 회오리 슛을 쏘며(피구왕 통키?) 친구들과 뛰놀던 그때의 그 얼굴들은 하나같이 밝았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최근에 본 친구들은, 어릴 적 밝은 그 얼굴 어디다 뒀는지 무게에 짓눌린 인상에 안타까움이 절로 일었다.

 

 

흑인-여자아이-두명이-손을-잡고-풀밭에-있는-나무-바닥-위에-서-있다

현실에 치이며 사는 것은 누구나 똑같지만, 꿈을 잃으면 희망도 없다.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 현실의 힘겨움 때문이 아닌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꿈이 없기 때문에 현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도 꿈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두 모여, 어렸을 적 꿈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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