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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기억의 지리산에서

by $%!@$! 202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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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겨울방학 때, 눈을 보기 힘든 부산에서 방학을 맞이할 때면 꼭 방문하는 곳이 지리산이었다.

발목까지 쌓인 눈에 차는 느릿느릿하게만 가던 때, 어색한 눈의 냄새가 어찌 그리 좋던지 20여 년이 훌쩍 지난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산을 올랐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무 위에 쌓인 눈을, 내 발자취 남기듯이 치고 지나가면서 폭포수처럼 맞으며 걸었던 것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산을 거닐고 다음에 방문하던 곳이 있었는데, 엄청나게 높은 천장을 가진 목욕탕이었다.

온천으로 기억되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가본 목욕탕의 천장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지만 어릴 적 기억이 너무나 크기 박혀있어, 언제나 높게만 느껴졌다.

 

지리산에-눈이-쌓여-있다
지리산 설경

 

이제는 부모님과 산을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어릴 때는 자식들을 데리고 온갖 구경을 시켜주려 본인들이 고생했던걸 생각하면, 이제는 자식이 부모님을 보시고 고생하러 다녀야 하는데.

언젠가 새로운 내 가족을 만들게 되면, 그때는 부모님과의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게 자명하고 남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

 

나이를 먹어가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미래를 그리기도 하고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지리산이라고 하면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학교에서 지리산 수련원을 간 적이 있었는데, 학교 학생의 글이 떠오른다.

 

 

지리산 수련원을 다녀와서

지리산 수련원은 말과 같이 수련을 하는 곳이다. 지리산은 산이라서 더욱더 춥고 무서운 훈련들이 많았다. 교관 선생님들도 호랑이 같이 무섭게 생기셨다. 그중 여자 선생님도 계셨는데 착할 줄만 알았던 여교관 선생님도 험악하게 대하였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유머가 있으시고 우리를 웃겨 주시려고 열심히 하는 천사표 교관 선생님이셨다. 나는 1박 2일 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촛불의식을 할 때에 제일 인상 깊었다.

부모님의 생각이 절로 나서 눈물이 비 오듯 떨어졌다. 언제나 부모님은 우리를 지켜주는 병사였다. 얼른 부모님 가슴으로 돌아가 부모님 품에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눈물로 흠뻑 젖은 채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 운동을 하느라 빨리 일어났다. 산에 올라가려고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하였다. 역시 아침의 공기는 맑아~

원래는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괴로워하고 짜증을 냈지만 새벽 아침 운동에는 상쾌하고 좋았다. 우린 이젠 숙소를 떠나고 교관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영 가기가 싫어졌다. 교관 선생님의 정이 쌓였나 보다. 우린 떠나서 목화 재배지에 들렀다. 목화들이 우릴 반겨주듯이 활짝 피어있었다. 목화들을 다 보고 박물관 안에 들어섰다.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옛날에 입었던 옷들이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베틀이 하나 놓여있었다. 베틀의 구조가 대단하였다.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로 구조가 많았다. 좀 더 들어가 보면 베틀로 인해 짜진 옷감들을 염색할 수 있게 하는 물질들이 있었다. 그중 매화, 잇꽃, 쪽 등 여러 가지 물질이 있었다. 목화의 중요성을 알고 다시 나왔다. 반성수목원은 안타깝게도 들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름답고 풍성한 그런 식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리산에서 집까지 오는 데에 많은 감동을 깊이 새겨 두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련활동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수련원을 가면 반드시 있는 게 2가지 있다.

교관과 촛불의식이다.

돈 내고 놀러 가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교관들에게 꾸중 듣고 혼나는 상황은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지금도 이런 것이 있다면, 요즘 아이들은 필히 거부하리라 생각된다. 그만큼 어이없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하나의 장점이 있다. 교관이 있음으로 촛불의식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강압적인 환경에 억울한 마음이, 촛불을 켜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괜스레 서글퍼지고 억울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게 되더라.

노래는 또 어찌나 슬프고, 교관들은 또 얼마나 천사 같은지...

이런 느낌은 군대에서 마지막으로 느껴본 듯한데,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지금도 추억에 젖어서 우울해지는지 기분이 맹숭맹숭해서 우울한지 모르겠다.

 

지리산은 나에게 여러 감정을 주는 곳이다.

오랜만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과거의 기억이 덧씌워져 지워질까 두려워 발걸음을 피한다.

후에 자식과, 부모님과 함께 가야겠다. 그러면 기억에 기억이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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